눈비닷컴

생물학과 인권 감수성 -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본문

나의 학문, 나의 탐구

생물학과 인권 감수성 -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눈비] 눈비닷컴 2019.08.26 02:32

[생물학과 인권 감수성 -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궁리

이 글은 2017년 생물학이라는 과학이 인권의 감수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작성한 글이다.

 


생물학과 관련지어 보는 인권 감수성에 대하여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읽고

 

우리 몸속의 흥미로운 비밀, 유전.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는 신화를 통해 우리의 생물학에 대한 궁금증을 끌어내어 독자를 마치 소설을 읽듯 책 속에 빠져들게 한다. 책의 뒤편에 적힌 생물학과 신화를 엮어 설명하겠다는 예고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처음 읽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성교육은 정자와 난자가 어쩌다 들어가서 이러쿵에 지나지 않는데, 더 나아가 본 책은 그런 형식적인 성적 지식에서 벗어나 한 성이 부담하는 역할, 생식세포의 번식 외의 또다른 역할, 생존 경쟁 그리고 쌍둥이와 여러 성적 정체성으로 보는 우리가 강요한 타인의 삶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은 포유류의 일종이기 때문에 암컷(여성)의 자궁을 빌려야만 탄생이 가능하며 지금까지 인간이 부와 모에게 각각 1/2씩의 유전정보를 받아 약 40주를 지낸 후 탄생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흔하게 여기는 이 일이 사실은 그 자체로 생존경쟁에 속하며 우리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적과 동시에 한쪽 성이 포유류 특유의 임신, 출산, 육아의 불공평 구조라는 저주를 가진다는 양면성에 대해 겉핥기가 아닌, 정말 제대로 알고 있을까?

암컷이든 수컷이든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게 전할 수 있는 양은 1/2. 하지만 수컷은 정자를 만들어 난자와 수정만 시키면 그 의무가 끝나는 것과는 달리 암컷은 그 이후의 임신기간을 견디고, 출산을 하며 새끼의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암컷은 이 구조의 균형을 조금이나마 맞추기 위해 수정에서 육아까지 수많은 단계에서 새끼의 도태생존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이는 생존을 위해 약한 새끼를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과도 연결되며 과연 새끼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모체의 테스트로 나타난다.

 

어떤 이는 이를 자신의 새끼를 대하는 모성애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자. 여성(인간)새끼의 도태카니발리즘대신에 임신과 출산의 기피를 보인다. 우리는 이 불공평한 구조를, ‘임신과 출산’, ‘’. 이 두 가지의 사회적 모순 상황 역할을 모두 여성에게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모성애가 없다며 비판하고 있지는 않는가? 일하는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더 많은 생존경쟁의 무게를 짊어진다. 이는 이란이 법적으로 피임을 금지한 것과 미혼자의 직장내 차별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생존경쟁에서 더 많은 짐을 진 일하는 여성에게 더욱 평등한, 같은 선상에 올라 경쟁하게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사회가 말하는 모성애를 들이미는 행동(Misogyny)을 우리가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또한 그런 모성애를 강요하는 행동은 어디까지일까? 사회가 그토록 여성들에게 강조하는, 어찌 보면 굴레로 변질된 모성애라는 것의 정의는 무엇이며, 과연 이 모성애는 어디까지가 적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진화를 해 온 인간의 다른 짐승들을 뛰어넘는 차이점이다.

 

, 우리는 지금까지 생물학으로 보는 암컷의 생존경쟁과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샴쌍둥이라는, 어딘가 생소한 이름의 쌍둥이를 알고 있는가? 마치 샴페인을 떠올리는 이름의 샴쌍둥이(Siamese twin)는 원인불명의 이유로 신체의 일부가 붙어서 태어나는 비분리 쌍둥이를 가리키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란성 쌍둥이로부터 제대로 분리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생긴다. 샴쌍둥이는 가볍게 분리가 가능한 유형부터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장기를 공유하는 등의 종류로 다양하며 현대 의학은 샴쌍둥이를 그들이 정상적인 인간과 다른 형태의 형제 자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단지 분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10~20만 명중 한쌍 꼴로 태어나는 샴쌍둥이는 분리수술을 할 경우 양쪽 다 살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을 경우 누구를 희생시켜야 하는지, 이런 과학적, 윤리적인 문제로 늘 논란이 되어왔고 그것은 쌈쌍둥이를 한 명으로 볼 것인지 혹은 독립된 둘의 인격체로 공평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윤리적 문제가 된다.

 

샴쌍둥이를 그저 마치 고장난 부품을 버리듯 우리는 아무 죄의식 없이 분리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하나의 생명을 마치 부속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만 우리의 표준화로 보고, 분리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샴쌍둥이는 태어난 직후 분리수술을 하는데, 과연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그들을 우리의 표준화로 분리하는게 옳은가? 이는 앞서 말한 샴쌍둥이의 유형중 한쪽이 다른 한 쪽의 장기를 공유하는 일을 만나며 윤리적 측면과 여러 측면이 격돌하게 된다. 그럴수록 작가는 이것에 이 의문을 던진다. “과연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란 어떤걸 의미할까?하고.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 그것은 인권존중의 시작이며 동시에 많은 희생을 가진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를 생명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과학기술은 방향을 달리할테니까 말이다.

 

이제는 성적 정체성과 우리 사회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관용성을 통해 생물학과 인권의 경계를 넘나들 시간이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자신의 진짜 성을 찾은 사람을 우리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고 한다. 아직도 그들은 차별받고 있는데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트랜스젠더는 왜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그들의 성적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 쨰로 트랜스젠더는 성기의 모양은 바뀌었으나 자궁과 난소가 없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이의 경우엔 보통 여성이라도 자궁과 난소가 없는 기형인 경우는 종종 발견되며, 자궁암과 종양 등으로 들어낸 사람도 많기 때문에 적절한 주장은 아니다. 또한 두 번 째 이유로는 염색체를 내세우는데, 성전환자가 성기를 변환시키더라도 염색체 타입이 남성 혹은 여성이기 떄문에 정정을 해줄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스와이어 증후군(Swyer Syndrome)이란 것으로 반박이 되는데, 이 스와이어 증후군은 유전병의 일종으로 이들의 염색체를 보면 상염색체 44+성염색체 XY의 남성형 타입이지만 실제 표현형은 여성이다. 이 증후군 환자들은 작지만 난소와 자궁을 가지며, 힘들긴 해도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예가 있다. 그렇다면 이 스와이어 증후군 환자는 남성일까, 여성일까?

 

자신과 같은 성,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동성애자라고 칭한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동성애를 단순한 경멸과 혐오를 넘어 증오와 분노를 느끼며 대해왔다. 또한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구분하여 동성애자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 역시 존재했다. 동성애자는 최근에 와서야 그들은 미친 사람이 아닌 그들 자신으로서 보이기 시작했다. 게이는 이성애자와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유전자 연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책에 의하면 사람들이 동성애를 대하는 시각은 차이를 보이는데, 동성애를 개인적 차원의 자유와 선택으로 보고 타인의 자유와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 문제이기에 간섭할 수 없다는 시각과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 소수자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은 틀리다라고 배척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규정짓고, 자신도 모르게 혐오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해왔을 것이다. 이는 나도 한때 마찬가지였었으며 대상의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게 아닌 이상은 아무리 숭배하더라도 결국 혐오로 통할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인권 감수성을 위해 모든 성과 성적 취향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성적 정체성. 이것은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라도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개입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덧붙여서, 동성애는 찬성’, ‘반대한다기보다는 지나가는 커플의 사랑고백처럼 찬성과 반대가 필요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걸 이 독후감을 읽게 될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생물학에 관련한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생식, 유전자 성, 카니발리즘, 질병, 호르몬, 면역계,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내가 특히나 주목한 점은 생식과 성 소수자에 대한 부분인데, 이를 내 관심사인 인권 감수성에 연결시켜 볼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나는 이 독후감을 쓰며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쓰는 인권 감수성에 대한 내용이 나중에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느리지만 꾸준히, 소수자들의 인권을 지키는데에 작은 도움을 기여하고 싶다.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