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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기억의 결과다 - 2018년 낭독 대회 원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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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기억의 결과다 - 2018년 낭독 대회 원고

[눈비] 눈비닷컴 2019. 8. 26. 02:14

[존재란 기억의 결과다 - 2018년 낭독 대회 원고]

GoranH

이 글은 2018년 교내 낭독대회에 나갔을 때의 원고이다. 사람의 존재도 누군가의 기억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역사든 추억이든,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존재도 잊혀진다.


낭독 작품

< 바래지는 색들과 선 >

 

낭독 부분

어린 시절, 나는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당시 부모님은 나에게 위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부모님은 내가 위인을 존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내가 그들처럼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존경해서 만이 아니었다. 내가 위인들을 부러워했던 이유는 그들이 위인이라서 잊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죽는 것이란 뭘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른 중2병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 어린 나에겐 죽음이라는 것이 굉장히 무서운 단어였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서, 자연사는 별로 고통스럽진 않단 걸 알았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릴 때처럼 더 이상 죽음의 고통을 막연히 두려워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내가 무서워하게 된 것은 죽음의 고통이 아닌 죽음으로 인한 망각이었다.

위인전의 위대한 위인들은 위대한 업적으로 인해 길이 기억된다. 하지만 나는 죽은 후 가까운 가족에게 기억될 뿐, 그 외의 사람들에게서는 몇 년? 아니,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잊혀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위인들을 시기하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흥미를 잃었던 독서를 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에 영향을 준 두 개의 유명한 시리즈 소설은 그때 읽은 것이다.

한 소설의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한 명의 불멸자가 등장한다. 그 불멸자는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느날 그의 나라에 알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났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사건 후에 불멸자가 되었다. 불완전한 불멸자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 불멸자는 불멸자가 된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잊지 않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질 망각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불멸자의 기억은 선명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불멸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불멸자에겐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사랑하는 이와의 기억들이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나도, 그때의 감정까지 선명히 떠올릴 순 없었다. 과거의 감정을 기억할 뿐... 이제 그것은 더 이상 감정이 아닌, 기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불멸자는 그것을 슬퍼했다.

또 다른 소설의 에피소드에서는, 한 평범한 소년이 우연히 여행을 떠나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다. 그 존재는 소년에게 소년의 동료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소년은 그 존재에게 말했다. 자신의 동료는 하나가 아니라고... 그 동료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여러 사람 같다고... 누군가의 듬직한 아들인 동료, 마을의 든든한 경비대장인 동료, 마을 아가씨의 연인인 동료, 자신의 친구인 동료이기 때문라는 것이다. 단수의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복수의 한 사람이라고 소년은 말한다.

나는 이 두 소설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나만의 결론을 지었고, 위인을 질투하던 것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한다면 그건 그림과도 같다. ‘내 존엄성가치를 실천하는 단수의 나스케치라면, 나의 업적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 위에 그려지는이고,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감정은 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변인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 그것은 기억뿐만 아니라 선명한 감정들이다. 그렇게 에게 한 가지 색이 더 칠해지고 있었다.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색이 바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그림의 이다. 하지만 선만으로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다 내가 있다. 그 모든 것을 모았을 때 비로소 내가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스케치 위에 선이 있고, 색이 칠해졌을 때 그림은 완성된다. 이렇게 볼 때, 위인들은 선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들의 업적은 기억되겠지만 누군가의 친구, 가족, 사랑은 이제 없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이 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알록달록하다. 현재라는 이름으로 지금 난 행복하다.

 

선정 이유

예전에 학교에서 문학 수행평가로 수필 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초고를 제출했던 당시에는 꽤 칭찬받은 글이었는데, 불행히도 수행평가의 점수가 좋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남아서 올 해의 낭독대회에는 이 수필을 선택해 좀 더 다듬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존재가 어떤지 잘 모를 때가 잦다. 누군가가 죽는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의미가 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존재와 관계의 상관성을 하나의 그림으로 비유하여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존재라는 것을 어려워하는 또래에게 좀 더 알기 쉽게 다가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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